임은정 검사님 페이스북 최근글

2020. 1. 29. 09:06정치소식

진중권 교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다는 소문을 뉴스로 보았습니다.
저에게 법률 상담이나, 의견을 구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생업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검찰개혁 디딤돌 판례 만들기 5개년 계획에 따른 국가배상소송과 고발사건을 진행하고 있어 바쁘기도 하려니와,
그 숱한 상담 요청과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부적절하여 답을 해드리지 않고 있지요.
그런데, 진교수님이 저에게 궁금해하시는 부분은 제 많은 페친분들도 궁금해하실 듯 하네요.
제 페친분들을 위해 제 입장을 밝힙니다^^

저는 검찰 내부자로 2013년 무죄구형건으로 징계를 받은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내부게시판과 페이스북 글로 징계하겠다는 주의와 경고를 수시로 받았습니다.
또다시 징계할 경우를 예상하고, 징계취소소송과 국가배상소송 대비용으로 보이스펜을 사고 비망록 작성에 들어간 게 2016년이지요.
보이스펜은 녹음 테스트만 해보고 차마 녹음은 못했는데, 조희진 검사장님 앞에서 펼쳐든 업무일지에 보이스펜이 있어 조검사장님이 알아챌까봐 식은땀이 난 적도 있습니다.

제가 하는 검찰 관련 말과 행동은 징계취소소송까지 각오하고 하는 것이라,
저에게는 직을 건 행위입니다.
하여, 근거와 증거가 있는가? 증거능력과 신빙성은?
승소 가능성을 재삼재사 따져 묻고
업무와 언행에 트집잡힐게 없는지
살얼음판 걷듯 조심하며
자신이 있을 때, 비로소 감행했습니다.
검찰 외부인이 직을 걸지 않고 검찰을 논평하는 것과는 그 처지와 입장이 다르지요.
그래서, 말의 무게도 다릅니다.
저는 제 직을 걸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검찰 관련 각종 수사와 인사 논평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하는 내부자이기도 하고,
검찰 내부에서 하기 어려운 검찰 비판이라는 제 소명을 감당하기 버거운 저로서는
수사팀 관계자, 조직 옹호론자 등 진교수님과 입장을 같이 하는 검찰 간부들이 너무도 많은 중앙지검 수사나 인사에 대하여까지
공부하고 탐문하여 한 줄 논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여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법률가이자 실무자로서 장관 인사청문회 당일 피의자 조사 없는 사문서위조 기소 감행을 검찰의 인사개입으로 판단하고 있어,
보수언론이나 적지 않은 분들이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결과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저는 검찰이 주장하는 수사 결과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추후 평가할 생각이라, 전제사실에 대한 견해차가 있습니다.

재판부에서 정겸심 교수의 사문서위조 사건 공소장 변경을 쉬이 허가해줄 리 없다 싶어서, 행안위 국감장에서 조심스레 말을 했었는데, 제 예상대로 되었지요.
공소시효 때문에 부득이 피의자 조사 없이 사문서위조 기소를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일부 언론과 일부 국민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실무자인 저까지 납득시키기엔 너무도 볼품없는 핑계입니다.
그건에 대해서만 과감하게 기소하였을까, 기소가 그리 과감하면 수사는 얼마나 거칠까...
우려가 적지 않은데요.
검찰이 그렇게 망가진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내부자로서, 제 우려가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알면, 판단하고 말할 것인가에 대해
각자의 기준과 처지가 다릅니다.
진교수님을 비롯하여 궁금해하시는 많은 페친분들께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2012년부터 이명박 정부의 검찰,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물론이요,
문재인 정부의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에도 검찰의 잘못을 내부게시판과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비판해왔지요.
작년 하반기부터 법무부와 검찰간에 균열이 발생하였는데,
선거로 수시로 심판받는 정치권과는 달리 사실상 영원히 이어지는 조직인 검찰이 가장 큰 거악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저로서 지금까지처럼 검찰 한 우물만 팔 각오입니다.

작년 9월,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발령을 조건으로 고발 취하 등을 요구받았을 때,
그 법무부 간부에게 말했지요.
"저는 민주당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믿지 못 하겠습니다. 제 고발사건으로 검사의 직무유기, 직권남용에 대한 판례를 남기는 게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블랙리스트 작성 관여자들인 한동훈 검사장, 신자용 차장, 피디수첩 송경호 차장 등 그 시절 그때 검사들을 여전히 중용한 것도 문재인 정부이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과 여전히 싸우고 있는 저로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싶을 만큼 고단했으니까요.

법무부와 검찰간의 균열로 제 뒷배가 갑자기 몹시 든든해 보이고,
이로 인해 제가 영전을 위해 이러는 것처럼 말하는 검찰 동료들도 있고,
검찰 밖 일부 차가운 시선도 있습니다만,
각자 서있는 위치에서 제 뒷배경이 달리 보이는 건,
제 탓은 아니겠지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조심스럽지만, 묵묵하게
제가 가야 할 길 계속 가보겠습니다.

P.S. 1. 제가 감찰직 공모에 응하긴 했는데, 차장급인 특별감찰단장이나 감찰담당관이 아니라 부장급인 감찰1과장 공모에 응했었습니다. 저는 승진이 아니라, 검찰이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기를 원하는 것인데, 감찰중단사례들을 고발해온 제가 공모에 정작 응하지 않는다면, 비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까지의 징계기록을 전면 재검토해서 형사입건 되었어야 할 검사들을 적극 입건, 기소하고, 불입건 경위를 살펴 관련자들을 직무유기 등으로 입건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살벌한 업무계획을 적어냈는데, 만약 발령이 난다면, 아마도 총장님과 매일 논쟁해야 하고, 이의제기권 행사, 수사심의회 소집 요청, 권익위 부패신고, 경찰청 고발 등 각종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던 저로서는 공모에 탈락하여 아쉽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도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전을 바라고 이러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혹 오해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해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 2. 검찰이 검찰다웁지 못하고, 검사가 검사다웁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네가 검사냐?”를 묻는 서글픈 시절입니다. 2009년 9월 20일 미니홈피에 쓴 일기가 떠오르네요. 저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그 이름,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