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때 고배' 충북 청주…'황금알' 방사광가속기 어떻게 품에 안았나

2020. 5. 9. 08:37경제소식

'MB때 고배' 충북 청주…'황금알' 방사광가속기 어떻게 품에 안았나

 

평가요건 중 배점 50점 '입지조건'에 집중해 유치전 준비
당 초월 의기투합도…정병선 "정계인사 아예 안 만났다"

 

8일 충북 청주가 고용효과로만 13만명 창출이 기대되는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최종 주인공이 된 배경에는 '입지조건'이 주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북은 다른 평가요건보다 배점이 높은 입지조건에 집중해 유치전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경쟁을 벌인 전남 나주 또한 충북 청주가 내세운 부지(오창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와 같이 단단한 화강암반 지질구조, 교통 또한 편리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충청권에 밀집한 이공계대학·연구기관, 수도권과의 밀접성, 교통편의성 등에서 점수가 밀린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바이오클러스터로 꼽히는 청주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 등 국내 연구기관과 관련 대학의 절반 이상이 충청권과 수도권에 밀집해있다. 특히 충북 청주가 내세운 부지는 서오창IC에서 5분, KTX오송역과 청주국제공항에서도 10분 거리에 위치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힌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 선정 평가 기준은 △제공부지, 진입로 등 '기본요건'(25점) △지질구조의 안전성과 시설 접근성 등 '입지조건'(50점) △재원조달의 실현가능성 등 '지자체의 지원'(25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부지선정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명철 위원장은 이날 세종 과기정통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충북 청주가 전남 나주를 제친 이유에 대해 "지리적 요건, 연관 산업 형성 정도, 발전 가능성 등이 (나주가) 청주에 비해 점수가 낮았다는 판단"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이 위원장이 언급한 것들은 모두 입지조건의 구체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다만 지역갈등이 자칫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명확한 최종 점수를 밝히진 않았다.

지역경제를 살릴 '황금알' 사업인 이번 방사광가속기 부지 선정을 위한 승부는 이미 지난 6일 '1차 관문'인 발표심사에서 갈린 것으로 드러났다. 7일 진행된 '현장 심사'는 각 지역이 낸 유치계획서와 혹시 다른 점이 있는지 정도를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6일 발표심사 결과, 비공개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날 밝혀진 각 지역 유치 발표평가 점수에 따르면 청주시(90.54점), 나주시(87.33점), 춘천시(82.59점), 포항시(76.72점) 순이다.

이중 1,2위인 청주와 나주가 현장 심사 대상인 '2파전'으로 좁혀졌고 현장 실사 이후에도 이변없이 당초 순위대로 청주가 나주에 3.21점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최종 부지로 선정됐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점수에 대해 "(양 지역 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듯해도) 통계적으로 본다면 유의미한 큰 차이"라며 "23개 항목을 점수로 환산했고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14명이 평가한, 매우 의미있는 평가"라고 말했다.

충북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방사광가속기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경북 포항에 고배를 마셨고 이번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절치부심했다. 2017년부터 방사광가속기 유치 재추진을 위한 검토에 나섰고 지난해 7월에는 이미 후보지를 선정했다.

일찌감치 국회와 지역에서 토론회를 연이어 개최하는 등 방사광가속기에 대한 대도민·대국민 홍보에 주력했고 온·오프라인 서명운동도 전개했다. 당을 초월한 의기투합도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과 미래통합당 충북도당은 지난달 28일 방사광가속기 청주 오창 유치를 위한 건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이런 움직임 때문에 이번 방사광가속기 부지 선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3월부터 진행된 방사광가속기 부지 선정을 두고 각 지방자치단체장과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일련의 지역에 가까운 인사들 간 신경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 또한 이런 시선을 알고 있다는 듯 이날 브리핑에서 "위원회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매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공모의 취지에 맞게 공정하고 신뢰성 있게 평가했다"고 강조했다.

정병선 과기정통부 제1차관도 <뉴스1>과 만나 "지자체장이나 지역의원들을 아예 만나지 않았다. 건의사항이 있다고 하면 서면으로 받아 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
선형가속기에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전자석을 이용해 전자를 휘게하여 방사광을 발생시켜 원자, 분자 수준의 근원적 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첨단연구시설. 방사되는 빛은 적외선에서 X-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여 연구자는 필요에 따라 적정파장의 빛을 분광하여 실험에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8월 29일 포항공대에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설치했으며 9월 29일 준공식을 함으로써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 4세대 방사광 가속기 보유국이 됐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슈퍼 현미경이다. 살아 있는 물질의 분자구조 움직임을 나노초(10억분의 1)의 1000만 분의 1초인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단위까지 분석한다. 상상 이상의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광합성과 생명 화학반응을 보기 위해서는 이런 현미경이 필요하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1년 착공해 5년 만에 준공됐다. 지곡동 일대 2만620㎡ 부지에 길이 1110m, 높이 3m로 건설된 국내에서 가장 긴 단층 건물이다. 사업비만 4298억원이 들어갔다.


1995년 가동을 시작한 3세대 가속기에서 만들어내는 엑스선 세기는 햇빛의 100억배다. 이번에 준공된 4세대는 그보다 1억배 강한 100경배에 이른다. 빛이 더 세다는 건 더 작은 세계를 밝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으로, 한국이 세 번째다.

방사광가속기를 산업 분야에서 활용해 성과를 올린 사례는 적지 않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단백질 결합 구조를 밝혀내 치료 효능이 나타나는 과정을 규명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철강재의 결함을 파악하는 데도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광통신 반도체소자 불량률을 70%에서 10%로 개선했다.

단백질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도 유용하다. 바이러스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방사광가속기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반도체 산업의 벽이나 다름없었던 10㎚ 이하 반도체 공정 개발도 가능해진다.

4세대 가속기는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현상까지 살필 수 있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물이 생성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식물 잎에서 일어나는 광합성 과정을 확인해 식물을 모방한 태양전지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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