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님이 스트레이트 윤석열편을 보고 페이스북에 쓰신글 퍼옴

2020. 3. 11. 16:03정치소식

“대한민국의 검사가 2,000명이 넘습니다. 검찰총장의 친인척 의혹 조사해야 한다는 검사가 있다면 저희한테 연락 주십시오. 그동안 취재한 자료 다 넘겨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추가 제보도 기다리겠습니다.”

어제 MBC <스트레이트>를 본방사수하다가 움찔 했습니다.

과거사 무죄구형 이후로 “당신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며 사건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검찰청으로 직접 찾아와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제출하시는 분들도 많구요.

하지만, 제가 있는 검찰청은 범죄지나 피의자가 사는 곳이 아니어서 관할권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 수사검사를 수사 받을 당사자가 정할 수 없는 노릇이라,
관할 있는 청으로 사건은 즉시 이송되거나 다른 검사에게 사건 배당되고 있습니다.

2019년 2월, 경향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칼럼을 통해 2015년 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감찰라인에 대한 수사와 감찰 요청을 묵살했던 문무일 검찰총장, 문찬석, 여환섭, 장영수 검사장을 대국민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의기충천한 몇몇분들이 충주지청에 찾아와 문무일, 문찬석, 여환섭, 장영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해주셨지요(고발인분들이 페이스북과 유튜브로 고발 사실을 당시 공개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서울 사람들 일이라 충주지청은 관할이 없어,
중앙지검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충주지청에 접수된 고발사건 중간 결재자였다면, 이런 말을 제 담벼락에 끄적일 수도, 자료 제출할 수도 없었겠지요.
저는 참고인이어서 직무 배제되는 대신, 충주지청에서 진술도 하고 두툼한 증빙자료도 제출했어요.
제 증빙자료가 없었다면 중앙지검에서 아마 빛의 속도로 각하해버렸을텐데...
중앙지검은 충주에서 이송 온 사건을 제 고발사건과 함께 고이 모셔 두고 지금 끙끙 앓고 있을겁니다.

2,000명 검사 중 수사 관할이 있는 검찰청 검사는 극히 일부이고,
관할권 있는 검찰청 검사라 하더라도, 배당 기록에 치여 숨쉬기도 벅찬 형사부 검사들에게 인지 수사할 여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총장 장모에 대한 진정 사건이 ‘의정부지검’에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2017년 상반기 제가 의정부지검에 근무할 당시, 수사지휘 전담하며 매월 약 550여건 배당 받았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배당 기록 보느라 하늘 볼 여유조차 사치인 형사부 검사들은 관할권이 있더라도 방송을 보고 수사에 착수할 여력이... 전혀 없지요.

그리고, 인지 수사를 하려면 층층시하 결재를 받아야 하고, 검찰총장, 검사장은 직무이전권을 발동하여 마음에 드는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관할권이 있고, 인지 수사할 여력과 의지가 있더라도
검찰총장과 검사장의 권한은 그 의지를 충분히 꺾을 수 있지요.

대개는 경험과 경륜이 월등히 앞서는 상급자의 지적이 합리적이지만,
상급자가 빽을 받아 작정하고 우기기 시작하면 하급자가 대적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요.
저호봉검사 시절, 음주측정거부/무면허운전 사건에서 상급자가 ‘주차할 곳을 찾아 운전한거면 운전자에게 운전의 고의가 없는 것이니 범죄가 아니라’고 우겨, 상급자가 인사 이동할 때까지 제가 6개월 넘게 수사지휘로 버텼었습니다.
그렇게 참고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공판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무죄 구형을 강행하게 된거니,
부끄럽게도 저 역시 처음부터 용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요.
하급자에게 용기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관장의 결재권과 직무이전권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어제 방송을 보시고 2,000명 모든 검사를 비겁한 자로 오해할 페친분들이 많으실 듯하네요.
속상해할 적지 않은 후배들을 대신하여 법률과 현실을 짧게 설명드렸습니다.

의정부지검에서 총장 장모 진정 사건을 누구에게 배당하였고, 어찌 수사되고 있는지...
저도 많이 궁금합니다.

검찰에서 사건 배당은 사실상 배당권자 마음이지요.
배당권자가 민감한 사건을 저 같은 사람에게 배당하지는 않을테고,
강단 있는 검사가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이의제기권을 행사해도 현행 이의제기 절차 규정상 찍어누르기 하거나 재배당해버리면 되는 현행 검찰시스템이 여전하여 불안불안합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배당제도 고치라고 권고했었고,
이의제기권 절차규정 고치라고 권고했는데,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검사의 용기도 필요하지만, 검사의 용기를 지켜줄 제도개선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를 검찰이 수용할 때까지,
많은 페친분들에게 관심 계속 부탁드립니다.